동의 없이 녹음하면 징역 10년? ‘통화녹음 금지법’ 논란 일파만파 | KS News
[IT동아 권택경 기자] 당사자 동의 없는 통화 녹음을 처벌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음성권 보호 취지라는 설명이지만, 부정이나 비리를 제보하는 증거로 통화 녹음이 활용되는 등 순기능도 적지 않았던 만큼 과도한 규제가 될 것이라는 반발이 거세다.
문제가 된 법안은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통신비밀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지난 18일 발의된 이 법안은 대화 참여자 전원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는 걸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최대 10년 징역과 5년 자격정지에 처해질 수 있다.
현행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제3자가 녹음하는 것만을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본인이 대화 당사자라면 상대방 동의 없는 녹음이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다. 이른바 ‘몰래 녹음’이 가능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 국내 판매 모델에서 모든 통화를 자동으로 녹음하는 기능을 제공할 수 있는 것도 현행법상 문제 소지가 없기 때문이다.
윤상현 의원 등은 개정안을 발의하며 제3자의 녹음만 제한하는 현행법은 음성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음성권은 헌법 제10조 제1문에 의해 보장되는 인격권에서 파생되는 기본권의 일종이다. 얼굴 등 신체에 관한 권리인 초상권처럼 개인이 음성 그 자체에 대해 지니는 권리를 말한다.
실제로 사생활 보호에 엄격한 국가들은 동의 없는 통화 녹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독일, 프랑스 등이 상대방 동의 없는 녹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녹음 파일 소지만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전체 50개 주 중 13개 주가 상대방 동의 없는 통화 녹음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통화 녹음을 허용하는 주라도 상대방에게 명시적인 동의를 구하게 하거나, 용도를 제한하는 등 세부 규정을 천차만별이다.
이처럼 국가마다, 주마다 통화 녹음 합법 여부나 허용 조건이 판이하기 때문에 애플은 미국용 제품과 해외용 제품을 불문하고 아이폰에 통화 관련 녹음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 법적 분쟁에 휘말릴 소지를 미리 차단한 셈이다. 삼성전자도 갤럭시의 미국, 유럽 판매 모델에는 통화 녹음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
법안 발의 소식이 전해진 후 국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는 들끓는 분위기다. 국내에는 통화 녹음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고, 순기능이 두드러진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개인이 갑질, 성희롱, 폭언 등 부조리한 일을 당했을 때 그 증거로 통화 녹취를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치인들의 민감한 통화 내용이 공개돼 정치적 쟁점이 되는 사례도 흔하다.
일각에서는 윤상현 의원이 녹취록으로 곤욕을 치른 전적을 언급하며 정치인들의 자기안위를 위한 입법 시도라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다. 윤상현 의원은 지난 2016년 2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를 비난하는 녹취가 공개돼 논란이 일자 탈당한 바 있다. 다만 당시 윤상현 의원의 녹취록은 제3자에 의한 녹취여서 현행법으로도 불법이며, 실제 녹취 유출자는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어 이번 개정안과는 무관하다.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전자의 갤럭시 국내 판매에 영향이 있을 것이란 관측도 조심스레 나온다. 업무 때문에 통화 녹음 기능을 꼭 써야 하는 사람들은 해당 기능이 없는 아이폰보다 갤럭시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법안에 따라 갤럭시에서 통화 녹음 기능이 제거된다면 아이폰과의 큰 차별점 하나를 잃게 되는 셈이다.
다만 아직 법안이 발의됐을 뿐,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발의만으로 여론의 반발을 산 만큼 이후 입법 절차에서 진통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표 발의자와 공동 발의자 11명 전부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인 만큼 국회 내 합의를 끌어내는 것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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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 IT동아 (CC BY-NC-ND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