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예뻐야 한다”… 뷰티 콘텐츠가 퍼뜨리는 성차별적 인식 | KS News
[IT동아 정연호 기자] 피부 트러블이 있는 20대 후반 여성 A씨는 본인에게 맞는 화장품 제품을 고르기 위해 유튜브 뷰티 콘텐츠를 본다. 뷰티 콘텐츠를 보면서 제품을 추천받거나, 결혼식용 특별한 화장법 등을 참고한다. 다만, 그는 최근엔 뷰티 콘텐츠를 보면서 미의 기준이 높아졌다는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A씨는 “뷰티 콘텐츠를 보면서 특별한 날엔 이 정도는 꾸며야 된다는 압박을 받고 이를 따라가게 되는 거 같아요”고 말했다.
20대 중반 여성인 B씨도 구매하고 싶은 화장품이 생기면 화장품의 실제 사용감을 확인하기 위해 뷰티 콘텐츠를 본다. 뷰티 콘텐츠로 제품 정보를 얻긴 하지만 댓글창에서 보이는 “나도 저렇게 마르고 싶다”는 반응 때문에 뷰티 콘텐츠 이용자의 건강을 걱정하게 됐다고 한다. B씨는 “구독자 연령층이 낮은 뷰티 콘텐츠의 댓글을 보면서 위험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아이돌을 동경하며 다이어트를 하는 친구들처럼, 뷰티 유튜버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생길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여성들이 뷰티 콘텐츠를 통해서 여성에 대한 온정적 성차별을 학습하고 있다는 전문가의 우려가 나왔다. 뷰티 콘텐츠는 화장품, 헤어, 패션, 운동법 등 외모를 가꾸기 위한 정보를 공유하는 콘텐츠를 말한다. 여성들이 유튜브 뷰티 콘텐츠로 인해 “여성은 날씬한 신체와 아름다운 외모를 갖춰야 한다”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학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온정적 성차별 인식을 학습한 여성은 신체에 대한 불만족을 느끼고, 도전적이고 주도적인 업무를 ‘남성적인 일’로 여기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게재된 ‘소셜미디어 뷰티 콘텐츠의 이용과 댓글 소비가 온정적 성차별 태도, 주도적 역할 수행에 대한 태도 및 집합행동의도에 미치는 영향(서울대학교 육은희 박사후연구원)’은 유튜브 뷰티 콘텐츠 시청이 여성에 대한 온정적 성차별 태도를 심화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해당 연구는 서울 소재 대학교 남녀 155명(남성 48명 여성 10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진행됐다.
연구팀은 뷰티 콘텐츠의 외재적동기(정보추구), 댓글소비와 온정적 성차별 태도 간의 관계를 회귀분석했다. 뷰티 콘텐츠를 시청하는 목적이 정보를 얻는 것이라면 온정적 성차별 태도를 유의미하게 증가시킬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역시 여자는 날씬해야 한다”처럼 마름을 이상화하는 등 여성에게 외모를 가꿔야 한다는 압박을 주는 뷰티 콘텐츠 댓글을 읽는 것도 온정적 성차별 태도를 심화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여성은 외모를 관리해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을 학습하게 되기 때문이다.
온정적 성차별은 여성을 ‘귀엽고’, ‘친절한’ 존재로 표현하는 것처럼 배려와 칭찬, 호의와 같은 태도를 나타내지만 전통적 성고정관념과 남성지배적 사고를 기반으로 하는 태도를 말한다. 여성을 보살펴야 하는 존재로 보거나, 남성이 여성보다 신체적 사회적으로 우월한 존재로 보기 때문에 여성이 성차별을 겪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구독자수가 약 200만 명에 달하는 국내 뷰티 유튜버의 경우, 최근 올라온 뷰티 콘텐츠의 댓글창 상위에 노출된 댓글을 보면 “갈수록 이뻐진다”, “메이크업이 잘 어울려서 예쁘다” 등의 외모와 관련된 칭찬이 자주 나타났다. 다른 한 인기 유튜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올라온 영상의 댓글창엔 “쌩얼이 정말 예뻐요”, “얼굴이 인형처럼 생겼다”와 같은 외모를 칭찬하는 댓글이 주로 보였다.
전문가들은 SNS 통해 진행되는 외모 관련 대화가 이용자들이 자기 몸에 불만을 느끼게 되는 통로라고 지적한다. 마름을 이상적인 외형으로 보는 인식을 접하게 되고, 사람들의 외모를 비교하는 대화를 보면서 자신의 외모와 신체도 평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우 이러한 불만은 외형을 가꿔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어, 보고서는 “회귀 분석을 통해, 온정적 성차별 태도가 주도적 역할에 대한 편향적 태도에 유의미한 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나타났다. 이는 온정적 성차별 태도가 높을수록 편향적 태도가 높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온정적 성차별적 인식이 ‘주도적인 업무 수행’이 요구될 때 여성을 선호하지 않는 편향적 태도를 심화한다는 것이다.
조사는 설문 참여자에게 조직의 한 부서를 총괄하는 책임자를 맡는 상황을 가정하고, 여성 부하 직원의 직무성과표를 읽게 한 후 위의 6개 업무에 여성을 얼마나 추천하는지를 응답하도록 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온정적 성차별 인식은 여성으로 하여금 경쟁적, 갈등적인 상황에서 배제되는 것이 여성이기에 받는 혜택이거나 조직 전체의 이익에 기여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섬세함이나 배려심을 여성의 장점으로 내세우면서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하에 주도적인 업무에서 여성의 역할을 보조적인 것으로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기존 연구결과들도 온정적 성차별 태도를 가진 여성들은 남성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업무 및 학업을 수행할 때 효능감이 낮아지고, 이러한 태도가 실제 행동에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한다는 결과를 내놨다. 남성적 업무라고 생각되는 행동에 여성이 참여할 때 자기 능력이 남성보다 열등할 것이란 생각이 업무와 관련된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만, 육은희 연구원은 “정보 추구가 아닌 뷰티 콘텐츠를 즐기는 목적은 온정적 성차별 인식을 유의미하게 증가시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이어 “본 연구의 샘플 수가 156개이기 때문에 연구 결과를 일반화하기 위해선 신뢰성 있는 표본을 확보해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글 / IT동아 정연호 (hoh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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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 IT동아 (CC BY-NC-ND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