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년 된 9.19 남북군사합의 존폐 기로…한국 “북한 또 위반 시 효력 정지 등 검토”
남북간 상호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자는 취지로 체결됐던 9.19 군사합의가 5주년을 맞았지만 존폐 기로에 섰습니다. 한국 정부는 합의 위반 행위를 지속하고 핵 위협을 고조시키고 있는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19일로 체결 5주년을 맞은 9.19 남북 군사합의는 2018년 당시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입니다.
지상과 해상 그리고 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한국의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5일 9.19 군사합의에 대해 “개인적으로, 군사적 취약성을 확대하는 것으로 폐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습니다.
신 후보자는 “국방부 장관이 되면 혼자 결정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도 “그동안 여러 보완책을 내놨지만 장관이 된다면 군사적 취약성을 다시 한번 전반적으로 검토해서 군의 추가적인 보완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통일부도 한국만 지키고 북한은 지키지 않는 합의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북한의 위반행위 재발 시 효력 정지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인애 통일부 부대변인은 “정부는 북한이 다시 군사분계선을 침범하는 도발 등 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서 남북관계발전법상 남북합의서 효력정지 판단 요건에 입각해 검토하고 있다”며 “추후 필요하다고 판단 시 적절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인애 부대변인] “지금까지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여러 차례 어겼기 때문에 앞으로 9.19 군사합의의 효력 지속 여부는 북한이 진정성을 가지고 합의를 지켜나갈지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남북 간의 합의는 상호존중이 되어야 하고 우리만 일방적으로 지키고 북한은 지키지 않는 합의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국방부가 펴낸 ‘2022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이 9.19 군사합의 체결 이후 작년 말까지 명시적으로 합의를 위반한 사례가 17건에 달합니다.
특히 지난해 12월엔 북한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휘젓고 다니면서 한국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월 4일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하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습니다.
한국의 ‘남북관계발전법’은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기간을 정해 남북합의서 효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회의 비준 동의를 얻은 합의서의 경우 효력을 정지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9.19 군사합의는 국회 비준을 받지 않아 국회 동의 없이도 효력을 정지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를 언급하는 것은 북한이 지난해부터 사실상 합의를 무력화시키는 도발을 전례 없는 빈도로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만 합의를 준수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깊게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북한이 직접적인 합의 위반 행위는 물론이고 전술핵 실전훈련을 벌이는 등 합의 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한국 입장에서 보면 군사적 위협 자체가 MDL(군사분계선) 근접지역에서 벌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근에 보면 전술핵 공격, 잠수함 진수식도 하고 그렇게 하잖아요. 그 자체가 9.19 군사합의 취지 자체를 전면적으로 무시하고 위반하는 행위니까 이런 상황에서 우리만 대응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가 있다, 우리 안보적 차원에서 그렇다면 9.19 군사합의를 폐기해야 되지 않느냐 이런 거죠.”
한국 내에선 9.19합의가 군사분계선 인근 상공 정찰과 전투기 작전 영역을 대폭 축소시켜 북한에 압도적으로 우세한 공군력을 가진 한국 군에 불리한 합의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인태 박사는 북한은 9.19 합의가 한국에 대한 유용한 전략적 카드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자신들의 핵 위협을 고조시키면서도 한국의 군사적 대응을 약화시키는 구실로 활용하고 있다는 게 김 박사의 설명입니다.
[녹취: 김인태 박사] “윤석열 정부에서 대북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강경하게 갈 때는 9.19 군사합의를 가지고 국제사회에 북한이 강변할 수 있는 이런 카드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대북 심리전이나 군사적 대응을 강화하거나 이러면 9.19 군사합의를 전면에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9.19 군사 합의에는 특히 북한과의 접경 지역에서 한국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금지하는 등 심리전 차원에서 북한 측에 유리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북한이 9.19 군사합의 파기 문제를 먼저 제기하지 않고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민간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한국 정부가 북한의 이런 이중적 행태를 계속 인내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북한이 지금까지 한 것에 대해선 인내심을 갖고 봤지만 무인기와 같은 영토 침범, 서해에서의 함정을 향한 공격 행위 또는 물리적 피해가 오는 도발이나 그리고 핵 실험 같은 적대행위는 안된다, 그런 조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 정부가 합의 효력을 중지하거나 파기를 먼저 거론하는 건 북한의 무력 도발에 명분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옵니다.
북한이 도발을 반복하고 있지만 9.19합의 이후 꽃게잡이 철마다 반복돼 온 해상 충돌이 크게 줄어드는 등 긍정적 효과도 있다는 평가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한국 정부도 고민이 있죠. 왜냐하면 사실상 유명무실화된 9.19 합의를 파기해서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 대응수위를 높이는 측면이 있지만 그러나 결과적으론 이게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높일 수 있거든요. 거기다 북한은 핵을 갖고 있거든요. 관건은 북한이 명시적으로 9.19 합의를 위반하면 바로 효력정지로 들어갈 가능성이 있고요.”
한편 5년 전 군사합의를 포함한 9.19 평양공동선언을 체결했던 문재인 전임 정부 인사들은 19일 서울에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은 “정전 체제 70년간 비무장지대 일대에 무력 충돌이 5년간 유지된 적이 없었다”며 “남북군사합의의 실효성은 이미 입증됐다고 볼 수 있고 한반도 전쟁 방지를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현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문 전 대통령과 김정은의 ‘평양 공동선언’이 체결된 지 5년이 지난 지금, 9.19군사합의 정신이 무색하게도 북한의 도발과 위협은 고조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최근에는 북러 군사협력까지 자행하며 유엔 안보리 결의에 반하는 불법 행위로 또다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며 “북한은 관심도 없는데 오직 대한민국만 지켜야 하는 일방적 약속은 우리 군에만 족쇄이고 이제 유명무실하다”고 규정했습니다.
김환용, VOA 뉴스, 서울에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