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도, 식감도, 모양도 진짜 고기 같네?” 진화 거듭하는 식물성 대체육 | KS News
[IT동아 권택경 기자] 식물성 대체육이 까다로운 소비자 입맛을 잡기 위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환경·윤리적 이유로 대체육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시장도 커지고 있지만 맛과 식감이 일부 소비자들에겐 여전히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푸드가 지난 2월 여론 조사 기관 엠브레인에 의뢰해 전국 20~30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체육을 경험해 본 적 없으며 앞으로도 경험해볼 의향이 없다고 답한 이들 중 69.4%가 그 이유로 맛과 식감을 꼽았다. 대체육이 앞으로 더 시장 규모를 키우려면 고기와 같은 수준의 감각적 특징, 즉 관능성을 갖추는 게 필수인 셈이다.
고기처럼 씹히고, 결대로 찢어지고
고기 특유의 식감은 여러 근섬유가 다발로 이뤄진 특유의 구조에서 나온다. 콩과 같은 식물성 단백질에는 이런 구조적 특성이 없다. 그래서 고기와 같은 식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식물성 단백질을 고기와 유사한 구조로 가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고기와 같은 조직감을 지니도록 가공한 식물성 단백질을 ‘식물 조직 단백(Textured Vegetable Protein)’이라고 한다.
현재 대체육에 쓰이는 식물 조직 단백에 가장 널리 쓰이는 가공 방식은 압출성형이다. 콩 단백질, 밀 단백질 등 재료를 압출성형기에 넣으면 스크류가 회전하며 재료를 밀어내 틀에서 뽑아낸다. 이때 가해지는 열과 압력, 힘(전단력)에 의해 고기처럼 결대로 찢어지는 조직감을 갖추게 된다. 현재 대체육 제조사들은 이 압출성형 공법에 저마다 노하우를 더해 재료 배합, 수분 함량, 작동 방식 등에 차이를 주면서 최대한 고기와 비슷한 식감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한계도 뚜렷하다. 특히 가공 형태가 원육에 가까울수록 이질감도 커진다. 현재 대체육 제품 대다수가 원육이 아닌 가공된 형태를 띄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세계푸드의 대체육 브랜드 베러미트는 햄, 소시지 등 가공육을, 풀무원과 농심 등은 불고기, 냉동 만두 등 가공식품을 앞세워 대체육 제품군을 꾸렸다. 미국 임파서블 푸드나 비욘드 미트도 소시지, 너겟, 햄버거 패티 등 분쇄육 기반 가공육이 주력 상품이다. 원육에 비해 식감 재현이 손쉽고, 설령 맛과 식감이 이질적이라도 양념이나 다른 재료로 이를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갈 길은 멀지만 원육 형태 제품도 점차 등장하는 분위기다. 슬로베니아 스타트업 쥬시 마블(Juicy Marbles)는 안심 스테이크의 일종인 필레미뇽 형태의 대체육을 개발해 지난 5월부터 미국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캐나다 뱅쿠버의 스타트업 어바니 푸드(Urbani Foods)도 올가을 등심 스테이크 형태의 대체육인 미스테이크(Misteak)를 출시할 계획이다.
‘고기 맛’ 나는 성분, 고기에만 있지 않다
식감 못지않게 중요한 건 맛이다. 우리가 고기에서 ‘고기 맛’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철분과 여러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아미노산 복합체 덕분이다. 최근 실제 고기에 근접한 맛과 향을 지닌 대체육이 등장한 건 이 아미노산 복합체를 활용한 대체육 향미 소재 기술이 발전한 덕분이다.
‘고기 맛’ 핵심이지만 고기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게 콩 뿌리에서 발견되는 레그헤모글로빈이다. 동물의 적혈구를 구성하는 헤모글로빈과 유사하지만 식물성이라 ‘식물의 피’라고도 불린다. 이 레그헤모글로빈에서 추출할 수 있는 힘(Heme) 분자가 바로 고기 맛의 핵심으로 꼽히는 아미노산 복합체다.
힘 분자를 핵심 향미 재료로 활용하는 대표적인 곳이 바로 임파서블 푸드다. 임파서블 푸드는 콩 뿌리에서 추출한 DNA를 활용해 유전자 변형한 효모를 이용해 이 힘 분자를 대량 생산한다. 콩 뿌리에서 레그헤모글로빈을 직접 추출하는 것만으로는 생산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탓에 유전자 변형 식품(GMO)이라는 꼬리표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유전자 변형 식품의 유해성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이를 기피하는 소비자나 규제 정책은 엄연히 존재하는 것도 현실이다. 임파서블 푸드가 비욘드 미트와 달리 국내나 유럽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유전자 변형 식품 규제와 소비자 거부감 때문이다.
다행히 콩 뿌리만이 힘 분자를 추출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인 건 아니다. 최근에는 해조류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시마, 미역 등 해조류는 예로부터 감칠맛을 내는 핵심 재료로 활용된 만큼 아미노산도 풍부하다. 대체육 소재 전문 기업 HN노바텍은 이 다시마와 해조류에서 추출한 아미노산 복합체로 고기 맛을 낼 수 있는 소재 ‘ACOM-S’를 개발해 대체육 제조사 등에 공급하고 있다.
해조류를 재료로 활용하는 건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이점이 많다. 국제보호협회(Conservation International) 해양 기후변화 부문 이사인 에밀리 피전 박사는 전 세계에서 해조류가 포집하는 탄소의 양이 연간 2억 톤 수준이라고 추정한다. 이는 미국 뉴욕주에서 매년 배출되는 탄소와 맞먹는 양이다. 해조류 양식을 늘리는 것만으로도 탄소중립에 기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HN노바텍처럼 원물이 아닌 필요한 성분을 추출하는 형태로 활용할 경우, 자원재활용과 어가 수익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다. 상품성이 없어서 버려지거나 가공 후 남는 미역과 다시마까지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HN노바텍 관계자는 “해외에도 해조류를 이용해 대체육을 만들려는 시도는 있지만 대부분 원물을 갈아 넣거나 단백질만 추출하는 수준이며, 향미를 위한 아미노산을 추출하는 기술은 일부 업체만 시도하고 있다”면서 “해조류에서 고기 맛을 내는 아미노산 복합체만 추출하는 HN노바텍의 기술은 해외 유사 업체와 비교해도 4년 정도 앞서있다”고 설명했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
—————
원천: IT동아 (CC BY-NC-ND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