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인데…고급화로 가격 경쟁력 잃은 VR 헤드셋들 | KS News
[IT동아 권택경 기자] 가상현실(VR) 헤드셋 신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역행하고 있다. 제품 고급화와 기능 고도화에 물가 상승까지 겹쳐 전반적 가격대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SIE) 코리아는 이달 초 ‘플레이스테이션VR2’의 국내 판매가를 79만 8000원으로 공식 발표했다. 플레이스테이션VR은 SIE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5’와 연결해 이용할 수 있는 VR 헤드셋으로, 내년 2월 22일 출시 예정이다.
플레이스테이션VR2(이하 PSVR2)는 2016년 발매된 플레이스테이션VR 이후 6년 만에 공개된 후속 제품이라 출시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가격이 공개된 후,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구매 의사를 철회하거나 보류하겠다는 반응이 나온다.
전작보다 훌쩍 높아진 가격 때문이다. 2016년 당시 49만 8000원에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VR과 비교하면 무려 30만 원이나 높아진 가격이다. 본체 역할을 하는 플레이스테이션5(디스크 에디션 기준 68만 8000원)보다도 10만 원 이상 비싸다. 말 그대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인 셈이다.
플레이스테이션 소식 전문 매체 푸시스퀘어가 자체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 중 절반이 넘는 56%가 PSVR2를 출시가에는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중 38%는 가격이 인하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답했으며, 18%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외 예약 구매하겠다는 응답은 26%, 출시일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응답은 18%였다. 구매 의사가 전혀 없다는 응답자는 18%로 적은 만큼 제품 자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만, 그중 상당수는 가격 때문에 구매를 망설이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높은 가격대와 더불어 콘텐츠 부족이라는 소비자용 VR 기기 시장의 고질적 문제를 크게 개선하지 못한 점도 PSVR2의 흥행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다. 현재까지 공개된 PS VR2 전용 게임을 살펴 보면 소위 ‘AAA급’이라 불리는 독점 대작 콘텐츠는 ‘호라이즌 콜 오브 더 마운틴’ 한 작품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부분 중소 개발사의 게임이나, 다른 기기에서 이미 선보였던 작품이다.
PSVR2를 이용하려면 플레이스테이션5를 포함해 150만 원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플레이스테이션5를 이미 보유하고 있다해도 80만 원이 추가로 든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만한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콘텐츠 생태계를 제시하고 있지 못한 형국이다.
메타가 지난달 출시한 ‘메타 퀘스트 프로’도 전작의 수 배에 달하는 가격표를 달고 나와 시장 경쟁력에 물음표가 붙은 상황이다. 퀘스트 프로의 국내 출시가는 219만 원으로, 2020년 출시된 퀘스트2의 출시가인 41만 4000원의 5배가 넘는다.
물론 퀘스트2는 일반 소비자용 보급형 기기이며, 퀘스트 프로는 전문가를 겨냥했다는 점에서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전문가용임을 고려하더라도 퀘스트 프로는 높은 가격을 합리화할 만한 콘텐츠나 활용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CNBC는 퀘스트 프로에 대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는 더 나아졌지만, 높은 가격 인상을 정당화할만한 새로운 앱은 없다”면서 “소비자들이 이 비싼 헤드셋에 돈을 물 쓰듯 써도 새로운 가치나 경험을 얻을 순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IT 전문 매체 더 버지도 “메타의 1499달러짜리 헤드셋은 새로운 강점보다 VR의 약점을 더 잘 보여준다”며 혹평했다.
이처럼 최근 VR 헤드셋들의 가격 경쟁력이 역행하는 현상은 급변한 경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퀘스트 프로는 ‘프로젝트 캄브리아’라는 이름으로 지난 2021년 처음 공개됐고, 플레이스테이션VR2는 올해 초 미국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에서 처음 공개됐다. 한창 비대면 서비스와 제품이 활황을 맞이하고, 시장에 돈이 흐르던 시절의 긍정적 전망 아래에서 기획된 제품이다. 그러나 정작 출시일을 맞이한 지금은 경기침체 우려가 팽배하면서 비필수품인 고가 VR 헤드셋은 시장 상황과 동떨어진 제품이 됐다.
글 / IT동아 권택경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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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 IT동아 (CC BY-NC-ND 2.0)